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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림

열정




 어느 것 하나도 쉽게 얻어진 것은 없다.


 하루하루를 피곤과 공부와 오락만으로 채우며 지내던 중에, 문득 나의 과거를 회상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과거를 회상하듯이, 나도 후회할 작정으로 하나 둘 나의 소리없이 지나간 과거들을 되짚어보았다.

 어릴적부터 늘 나는 기획하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종이게임을 만들기를 즐겨했다. 컴퓨터로 해본 게임들을 종이로 만들어놓고, 룰을 정하고 내가 컴퓨터가 되어서 친구들이 게임을 즐기면 나는 계속 새로운 이벤트, 퀘스트,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이후에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유행하던 홈페이지 만들기, 그리고 일본에서 건너온 'RPG만들기'라는 게임 제작 프로그램에 빠져서 하루가 멀다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게임을 만들었다. 원리를 파헤치고, 분석하고, 또 새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단순히 그것들을 체험하는 것보다 더 나를 불태우는 것들이었다. 종이와 펜은 내게 수백가지 세상을 만들어내는 소중한 도구였다.

 중학생 시절에는 유독 글쓰는 것에 더 빠져들었다. 당시 나는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고, 몇몇 학생들에게 괴롭힘도 받고 있었다. 그 전까지의 내 창작물들은 누군가를 위해서 만들어내는 기획물이었지만, 그때 이후로 썼던 글들을 읽어보면 거의가 소설이고, 수필이다. 내가 쓰고싶은 글, 그리고 내가 살고싶은 세상을 써내린 글이다.

 우연히도 중학교를 지내던 중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성격을 많이 바꿀 수 있었고, 고등학교 때엔 굉장히 외향적으로 변했다. 의도하지 않게 들어간 힙합 공연 동아리에서 그 에너지와 유대감에 이끌려 고등학교땐 그 열정을 동아리에 다 쏟았다. (학업은 굉장히 뒷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에 만나게된 큐브. 그 퍼즐 하나가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큐브를 빠르게 맞추는 데에 있어서는 다른 재능있는 친구들에 비할 바가 못되었지만, 그동안 겪어온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 나름대로 이 문화를 키워낼 수도 있겠다는 꿈을 품었다. 내가 즐기는 것보다 남이 즐기는 법을 찾아내기를 더 즐겨했던 내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신문, 뉴스, 예능, 취재등의 다양한 매체에 출연해 큐브를 알리고, 동호회와 대회운영에 참여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큐브를 가르쳐주고, 새로운 행사나 이벤트를 계획하는 등 내 20대의 반을 큐브에 쏟아부었다. 그 마음 중에는 내 생업 또한 이것을 통해 찾아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몇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한 순간이 찾아왔고, 나는 그 순간의 전부인 것 같았던 의리와 꿈과 자존심을 붙들고 버티다가 그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처음으로 돌아왔다.

 처음으로 돌아왔다 생각했던 것은 내 마음 뿐, 나는 이미 이십대 후반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을 빼고나면 나에겐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자존심은 바닥까지 무너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일 밖에는 없었으나 부모님의 지원아래 마지막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고민해왔다. 지나간 나의 청춘을 나는 헛되게 산 것이 아닐까 하고. 정체되었던 일이년을 제외하면 그 순간순간이 모두 열정이 가득했고 빛났었는데, 결국 그 길을 접은 이상 전부 헛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

 하지만 그 어떤 과거의 경험들도, 쉽게 얻어진 것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분명 그랬다. 어느것 하나 순조로운 것은 없었고, 노력과 불화가 어우러져 어렵게 어렵게 이루어낸 것들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이룬 것들은 전부 하나같이 열정이 있었다. 어떻게든 이루고자 했던 열정. 지금의 내게 결여된 바로 그것이다. 나는 과거를 잃은 것이 아니라, 열정을 잃은 것이다. 과거를 상실했다는 핑계로 도태되어있을 뿐이다.

 ...뜬금없이 떠오른 그 결론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으로만 놔둘수가 없어 두서없이 주절거려보았는데, 도저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